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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발효 음식의 위기, 냄새난다고 외면받는 청국장과 젓갈…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뭘까?

by 델리아 2025. 3. 26.

전통 발효 음식의 위기, 냄새난다고 외면받는 청국장과 젓갈…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뭘까?
전통 발효 음식의 위기, 냄새난다고 외면받는 청국장과 젓갈…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뭘까?

 

어릴 적 냄새만으로 식욕을 자극하던 음식들이 있었어요
방 안까지 퍼지던 청국장 냄새, 밥 한 숟갈에 짭조름하게 어우러지던 젓갈 한 점,
그리고 손으로 꼭꼭 눌러 담아 삭힌 홍어까지
그 모든 음식엔 정성과 시간이 담겨 있었고,
우리의 밥상 위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자리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음식들이
‘냄새나서 못 먹겠다’, ‘보기만 해도 비위가 상한다’는 말과 함께
하나둘 밥상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입맛이 바뀐 걸까요? 아니면 감각이 달라진 걸까요?

오늘은 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전통 발효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냄새’라는 감각 속에 잊히고 있는 전통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해요

 

‘건강한 맛’에서 ‘냄새나는 음식’으로: 발효음식이 겪는 인식의 변화


한때 발효 음식은 우리 식문화의 자부심이었어요.
시간이 만든 깊은 맛, 자연이 만들어낸 보관 방식,
조상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음식이었죠.
김치, 된장, 간장처럼 익숙한 발효 음식뿐만 아니라
청국장, 젓갈, 삭힌 홍어처럼 개성 강한 음식들도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전해 왔고요.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어요.
발효 음식이 ‘건강식’으로 여겨지는 한편,
냄새나 텍스처 때문에 꺼려지는, 때로는 ‘혐오 음식’처럼 인식되기도 하죠.
실제로 청국장 냄새를 처음 맡은 외국인들이 코를 막거나
젓갈류를 꺼리는 MZ세대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 안에서도 발효 음식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문제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거리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특히 도시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발효 음식을 접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어요.
할머니가 담그던 젓갈, 아버지가 청국장 끓이던 아침 같은 풍경은 이제 드물고
대부분은 마트에서 진공 포장된 ‘냄새 줄인’ 제품을 통해 접하게 되죠.

냄새는 ‘기억’과 ‘정체성’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감각인데
우리는 점점 그 향을 멀리하고 있어요.
냄새는 나쁜 것이고, 사람 많은 곳에선 피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죠.
청국장을 먹을 때 환기를 필수로 하거나
젓갈을 냉장고 한쪽에 격리 보관하는 모습은
이제 발효 음식이 더는 ‘자연스러운 음식’이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줘요.

우리의 감각이 변한 걸까요?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걸까요?
예전에는 "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고 했던 그 발효의 향이
이제는 "비위 상한다", "냄새 심하다"는 말로 바뀌고 있어요.
그 변화는 단순히 ‘입맛’이 아니라
전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일지도 몰라요.

 

젓갈과 청국장은 왜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젓갈과 청국장은 오랜 시간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였어요.
밥 한 숟가락에 젓갈 한 점이면 반찬이 필요 없었고,
청국장 끓는 냄새는 겨울 아침을 깨우는 신호 같기도 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익숙한 음식들이
‘냄새나는 음식’, ‘불쾌한 식감’, ‘외면받는 메뉴’라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젓갈은 대표적인 고염 발효식품이에요.
새우젓, 명란젓, 멸치젓 등 재료만 달라도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고
김치의 깊은 맛을 좌우하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의 젓갈은 그 자체만으로 소비되기보단
김치 제조용 부재료, 조미된 가공 식품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일부 젓갈은 '냄새를 없앤 젓갈'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기도 하죠.
본래의 맛을 없애고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가공된 결과예요.

청국장은 어떨까요?
청국장 특유의 발효취는 예전엔 “진국 냄새”라고 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외식업계에서도 청국장 메뉴를 보기 어렵고,
있다고 해도 냄새가 덜 나는 레토르트형 제품으로 바뀐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런 변화는 청국장이 가진 전통성과 ‘발효의 매력’을
점점 소비자 입맛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음식들은 SNS나 미디어 노출에서도 불리해요.
“비주얼이 떨어진다”, “냄새가 강하다”는 이유로
보기 좋은 음식이 우선인 소비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죠.
결국 전통 발효 음식은 ‘냄새나는 음식’, ‘공공장소에서 꺼려지는 음식’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이는 혐오의 경계로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그저 불호의 차원이라면 괜찮겠지만,
이제는 아예 배제되고 있는 흐름이 문제예요.
이러한 음식들을 좋아하는 사람마저 “취향이 특이하다”는 시선을 받게 되고
전통의 맥은 서서히 끊어지고 있는 거죠.

 

발효 음식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감각의 재교육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두가 발효 음식을 좋아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최소한 ‘불쾌하다’, ‘이상하다’는 프레임에 갇혀
전통음식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둬선 안 된다는 거죠.

우리는 한때 김치도 ‘냄새 나는 음식’이라는 이유로
비행기 반입이 제한되고 외국인들이 꺼리는 음식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그 배경에는 맛과 영양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함께 전달하려는 노력이 있었죠.
젓갈이나 청국장도 마찬가지예요.
냄새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음식이 가진 배경과 맥락,
그리고 우리 식문화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을 함께 조명해야 해요.

요즘은 ‘미각 교육’이 화두가 되고 있어요.
단맛, 짠맛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쓴맛, 신맛, 그리고 발효향처럼 복합적인 맛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시작될 수 있어요.

또한 외식 공간이나 음식 콘텐츠에서
발효 음식의 ‘비주얼’을 새롭게 구성하는 시도도 필요해요.
기존의 전통 이미지를 고집하기보다는
젊은 세대가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소개하는 거죠.
예를 들어, 청국장을 크림 파스타처럼 해석하거나
젓갈을 오픈 샌드위치 형태로 재구성해보는 방식도 가능할 거예요.

무엇보다 발효 음식에 대한 ‘냄새=나쁨’이라는 고정관념을 재해석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냄새는 때때로 낯설고 불쾌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시간, 환경, 손맛, 그리고 세대 간의 기억이 녹아 있어요.
우리는 그것을 향으로 기억하고, 맛으로 이어가야 해요.

지금은 냄새나는 음식일지 몰라도,
어쩌면 그 향이야말로 우리의 뿌리를 잇는 가장 강력한 감각일 수 있어요.
발효 음식의 미래는 결국
우리가 어떤 감각을 ‘존중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발효는 기다림의 미학이자, 음식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냄새난다고 멀리했던 음식들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방식과 정서, 그리고 문화가 녹아 있어요.
이제는 다시 그 향을 들여다볼 시간이에요.
불쾌함이 아닌 이해의 감각으로,
외면이 아닌 대화의 시선으로,
전통 발효 음식의 자리를 다시 찾아주는 건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