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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다 ‘간편함’을 택한 시대의 끝맛, 우리가 포기한 전통 음식과 잊고 있는 기억들

by 델리아 2025. 3. 27.

‘맛’보다 ‘간편함’을 택한 시대의 끝맛, 우리가 포기한 전통 음식과 잊고 있는 기억들
‘맛’보다 ‘간편함’을 택한 시대의 끝맛, 우리가 포기한 전통 음식과 잊고 있는 기억들

 

가끔은 그립죠
오래 걸려도, 손이 많이 가도,
정성껏 만들어낸 음식 한 그릇이 주던 그 묵직한 만족감

요즘은 간편하고 빠른 게 당연해졌지만
그렇게 쉽게 꺼내 먹는 음식들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자꾸만 떠오르는 맛이 있어요
지금은 불편해서 멀어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아 있는 그 맛

오늘은 그 ‘끝맛’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우리가 왜 전통 음식을 포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 뒤에 남는 감정들은 무엇인지 말이에요

 

간편함이라는 이름의 시대, 맛은 뒷전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바빠요.
아침은 출근길에 편의점 샌드위치, 점심은 회사 근처 덮밥 한 그릇,
저녁은 배달 앱 몇 번 눌러 도착하는 치킨이나 볶음밥
그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엔 하루 세 끼를 집에서 챙겨먹는 게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 끼라도 집밥 먹으면 ‘잘 챙긴 날’이라 말하죠

그만큼 ‘간편함’이 선택의 기준이 된 시대예요
사람들은 맛보다 빠른 조리, 간단한 조합, 편리한 구매를 우선합니다
전통 음식처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요리는
점점 귀찮은 일, 비효율적인 일로 여겨지죠
물론 이유는 있어요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공들여 만든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알아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현실 속에서 전통 음식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어요
장시간 끓여야 제맛이 나는 육개장,
재료 손질이 복잡한 잡채,
여럿이 모여야 제맛이 나는 전이나 김치 같은 음식들은
더 이상 현대인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지 않아요
대신 밀키트나 즉석식품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죠
‘먹는 것’의 의미가 점점 생존을 위한 루틴으로 바뀌고 있는 거예요

결국 맛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저 배를 채우면 됐고, 조리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설거지거리는 없어야 하고, 냉동 보관이 가능해야 하죠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음식만이 살아남고
전통 음식은 아무리 맛이 좋아도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점점 뒷자리에 앉게 돼요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맛있다’는 감각과 멀어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자극적인 조미료 맛에 익숙해지고,
입안에 감칠맛이 남지 않으면 밍밍하다고 느끼고
깊은 풍미보다 즉각적인 강한 자극을 원하는 식습관이 당연해지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식문화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바뀐 거라고 생각해요

 

손맛 없는 시대, 전통 음식은 왜 자리를 잃었나


예전에는 엄마 손맛, 할머니의 정성이란 말이 일상처럼 쓰였어요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그 정성을 당연히 여겼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낡은 감성처럼 들릴 만큼
삶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누군가 요리를 해주는 시간’ 자체가 사라졌고
그 과정에서 전통 음식의 맥도 함께 끊어지고 있어요

전통 음식은 대부분 손이 많이 가요
예를 들어, 명절 때 해먹던 음식들만 생각해봐도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고기 재우고, 탕 끓이고…
재료부터 조리, 상차림까지
하나하나 다 수작업에 가까운 수준이에요
이런 음식을 현대 사회에서 홀로 감당한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혼자 사는 1인 가구, 맞벌이 부부,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 육아로 바쁜 부모에게
전통 음식은 ‘맛있지만 너무 부담스러운 음식’이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지에서 제외되고
더 간편한 대체 메뉴로 넘어가게 되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음식이 왜 그랬는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도 함께 잊혀져가요

게다가 사회 구조도 전통 음식을 지지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급식으로 통일된 메뉴를 먹고
가정에서 요리하는 경험이 줄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만드는 일’ 자체에 익숙하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전통 음식은 더더욱 낯설게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거죠

게다가 손맛이 사라지면서
음식의 개성도 함께 줄어들었어요
할머니 집에서 먹던 김치찌개는
그 집만의 맛이 있었고
명절에 돌아가며 부쳐 먹던 동그랑땡은
하나하나 크기나 맛이 다 달랐죠
이런 ‘차이’가 오히려 매력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표준화하고
맛을 균일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결국 전통 음식은 시스템화된 세상 속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어요
손맛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만큼 ‘나만의 기억이 담긴 음식’은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어쩐지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끝맛이 남는 이유, 우리가 놓친 것들


우리가 전통 음식을 멀리하는 이유는 분명해요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고, 손이 너무 많이 가니까요
그런데도 가끔은 이상하리만큼
어느 음식이 떠오르며 입 안에 침이 고이기도 해요
그건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 음식에 얽힌 기억과 사람, 시간의 감각 때문이죠

어릴 적, 김장철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절이던 기억
설날 아침, 뽀얀 떡국을 한 숟갈 떠먹으며
한 살 더 먹었다는 얘기에 괜히 웃던 순간
그 모든 장면에는 음식이 중심에 있었어요
지금처럼 바쁜 시대에도 그런 기억이 유독 선명하게 남는 건
음식이 단지 맛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개였기 때문이에요

전통 음식은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고급지게 만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했는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맛도 맛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성과 마음이
입 안에 오래 남는 '끝맛'이 되었던 거죠

요즘 우리는 너무 빠르게 먹고,
너무 쉽게 잊고,
너무 가볍게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음식이라는 건 원래 ‘느린 것’이었고
그 안에는 기다림과 손의 온도, 삶의 리듬이 담겨 있었어요
우리는 그 모든 걸 '간편함'이라는 기준 앞에서 포기한 건 아닐까요?

물론, 바쁜 일상에서 전통 음식을 모두 지키는 건 어렵죠
그렇다고 전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 달에 한 번, 누군가와 함께 손으로 만두를 빚어본다거나
엄마가 해주던 그 찌개를 따라 만들어보는 일
그런 작은 시도들이 모이면
우리가 놓친 음식의 정서를
다시 조금씩 되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끝맛이 오래 남는 건
그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역할을 넘어
삶의 한 장면으로 남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걸 간편하게 얻고 있지만
그만큼 사라지는 기억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다시 묻고 싶어요
우리가 선택한 이 간편함,
그 끝에 정말 맛은 남아있을까요?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우리의 식탁도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어요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고,
설거지거리를 줄이고,
배달이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는 게
이젠 더 익숙하니까요

그런데도 문득 떠오르는 그 맛이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래서 더 따뜻했던,
손이 많이 갔지만 그래서 더 깊었던
그 전통 음식의 기억들

우리는 더 간편한 길을 택했지만
그 길 끝에서 ‘맛’이 아닌 ‘허전함’이 남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아주 가끔이라도 괜찮아요
손으로 재료를 다듬고,
시간을 들여 국을 끓이고,
서툴더라도 정성으로 한 그릇 차려보는 거예요

맛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너무 바빠서 잊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잠시 멈추고, 기억하고, 다시 느껴보세요
그 끝맛은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으니까요